태국생활정보
[칼럼] 태국 엿보기 38 - 9월에 만나는 세 Mahidol
9월에 만나는 세 Mahidol
태국에서 9월은 유난히 ‘Mahidol’이라는 이름을 자주 만나게 되는 달이다. 9월 24일은 태국의 의학과 공중보건 발전에 결정적인 족적을 남긴 마히돈 왕자(Prince Mahidol Adulyadej)를 기리는 Mahidol Day, วันมหิดล이고, 9월 20일은 그의 장남인 라마 8세 아난따 마히돈 국왕의 탄생일이다. 그리고 오늘날 태국의 대표적인 연구중심 대학 가운데 하나인 마히돈대학교 역시 바로 이 마히돈 왕자의 이름을 이어받고 있다.
그래서 9월에는 세 명의 ‘Mahidol’을 만날 수 있다.
첫 번째는 Prince Mahidol Adulyadej, 태국 현대의학과 공중보건의 아버지로 불리는 왕자다.
두 번째는 그의 장남인 King Ananda Mahidol, Rama VIII다.
세 번째는 이 왕자의 이름을 이어받은 Mahidol University, มหาวิทยาลัยมหิดล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 ‘Mahidol’은 같은 이름을 공유하면서도 각각 조금씩 다른 역사적 의미를 갖는다. 한 사람에게는 이름이고, 다른 사람에게는 왕실 가문명이 되었으며, 대학에서는 한 인물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는 교명이 되었다.

[Ananda Mahidol, KIng Rama VIII] [Prince Mahidol Adulyadej

[Mahidol University]
'Mahidol'이라 쓰고 ‘마히돈’이라 읽는다
한국인에게 Mahidol이라는 영어 표기는 상당히 당황스럽다. 영어 철자만 보면 ‘마히돌’ 또는 ‘마히돌르’ 정도로 읽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태국어 표기는 มหิดล이다. 그리고 태국어로는 มะ-หิ-ดน, 즉 세 음절로 읽는다. 우리말로 가장 가까이 옮기면 ‘마-히-돈’, 한국어 표기로는 ‘마히돈’이다. 태국어 사전 자료에서도 Royal Institute 방식의 로마자 표기는 ma-hi-don으로 표기되어 있다.
핵심은 마지막 글자 ล이다. 태국어에서 ล은 음절의 첫소리일 때는 ‘l’에 해당하지만, 음절의 끝에 오면 ‘n’으로 발음된다. 따라서 «มหิดล»의 마지막 ล은 영어식으로 ‘l’이라고 읽지 않는다. 태국어의 종성 규칙에 따라 ‘n’으로 발음한다. 그래서 «มหิดล ma-hi-don 마히돈»이 된다. 이것은 ‘Mahidol’이라는 영어 표기를 잘못 읽는 문제가 아니라, 태국어 발음 규칙을 영어 철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기는 차이다.
더 흥미로운 것은 มหิดล이라는 말 자체가 원래 태국어 고유어가 아니라 산스크리트어에서 유래한 말로, ‘땅’, ‘대지’, ‘지면’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태국 왕실에서는 이 단어를 인명으로 사용했다. 태국 왕실의 역사에서 ‘Mahidol’이라는 이름이 단순한 음절 조합이 아니라 고전어에서 유래한 의미 있는 왕실 이름이라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9월 24일, 마히돈 왕자를 기리는 'Mahidol Day'
9월 24일은 마히돈 왕자의 생일이 아니라 서거일로 마히돈 왕자를 기리는 기념일이다.
마히돈 왕자는 1892년 1월 1일 태어났다. 그는 짜끄리 왕조의 라마 5세, 즉 쭐랄롱꼰 국왕과 왕비 사왕 와타나(Queen Savang Vadhana)의 아들이다. 유럽에서 교육을 받고 독일에서 해군 장교 교육을 받았으며, 한때 독일 제국 해군과 태국 해군에서 복무했다. 그러나 태국의 의료와 보건 수준을 직접 경험하면서 자신의 진로를 바꾸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단순히 의사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태국에는 서양식 의학교육을 제대로 받은 의사와 간호사가 부족했고, 의학교육의 수준과 병원의 시설, 기초의학 교육, 공중보건 체계 전반을 현대화할 필요가 있었다.
마히돈 왕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공중보건과 의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공중보건 자격을 취득했고, 1928년에는 의학박사(M.D.) 학위를 우등으로 받았다. 그 과정에서 록펠러재단과 태국 정부 사이의 협력을 이끌어내어 태국의 의학·간호 교육 발전에 필요한 재정과 전문적인 지원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자신의 재산을 활용하여 의학·간호·공중보건 분야의 학생들이 해외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했다.
그가 귀국한 뒤에는 단순히 왕족의 이름으로 의료정책을 후원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시리랏 의과대학에서 예방의학과 사회의학을 가르쳤고, 치앙마이의 맥코믹병원에서는 실제 환자를 진료했다. 왕족이라는 신분에도 불구하고 환자를 직접 돌보는 의사로 활동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매우 짧았다. 마히돈 왕자는 1929년 9월 24일, 불과 3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이 바로 오늘날의 Mahidol Day가 되었다.
시리랏 의과대학은 그의 서거일인 9월 24일을 기념일로 삼았고, 이후 이 날은 태국의 의학과 공중보건 발전에 기여한 그의 업적을 기리는 날로 자리 잡았다.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환자를 돕기 위한 기부와 의료봉사도 이날의 중요한 전통 가운데 하나다.
마히돈 왕자가 태국 의학의 역사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유는 단순히 왕족이 의학을 공부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는 의료인을 양성하는 교육체계, 해외 유학, 기초의학 교육, 병원 발전, 공중보건, 간호교육을 하나의 연결된 국가 발전 전략으로 보았다.
그래서 태국에서는 그를 흔히 “Father of Modern Medicine and Public Health in Thailand”, 즉 ‘태국 현대의학과 공중보건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가 남긴 것으로 널리 알려진 정신도 바로 이와 연결된다. “배움 자체가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 인류의 이익을 위해 그것을 활용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이 정신은 훗날 그의 이름을 이어받은 마히돈대학교의 교육철학과도 깊게 연결된다.
마히돈 왕자의 가족, 그리고 한 가족에서 두 명의 국왕이 나오다
마히돈 왕자의 가족관계를 보면 태국 현대 왕실의 역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는 라마 5세 쭐랄롱꼰 국왕과 왕비 Savang Vadhana의 아들로 쭐라롱껀 국왕의 69번째 자녀, 37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모친은 라마 4세 몽꿋왕의 딸로 쭐라롱껀 국왕과는 이복남매 간이었으며 쭐라롱껀의 4명의 정비(Supreme Queen Consort) 중 서열로는 왕실 혈통의 수석 왕비(Chief Queen Consort)였다. 그녀는 8명의(아들 4, 딸 4)를 두었으며 이 중에 마히돈 왕자는 그녀의 7번째(아들로는 막내) 자녀이다.
마히돈 왕자는 1920년에는 훗날 태국 국민들에게 ‘Princess Mother[우리 말로 '국모'로 일해하면 될 듯]’로 알려지게 되는 상완 따라팟(Sangwan Talapat)과 결혼 후 세 자녀를 낳았다.
첫째가 Princess Galyani Vadhana이고,
둘째가 King Ananda Mahidol, Rama VIII,
셋째가 King Bhumibol Adulyadej, Rama IX다.
즉 한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두 형제가 연이어 태국 국왕이 되었다. 둘째 아들이 라마 8세 아난따 마히돈이고, 셋째 아들이 훗날 70년 가까이 태국을 통치한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다. 이 점 때문에 마히돈 왕자의 사망 이후 그의 가족은 태국 왕실사에서 더욱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1929년 아버지 마히돈 왕자가 세상을 떠났을 때 장남 아난따는 불과 네 살, 막내 푸미폰은 한 살 남짓이었다. 이후 세 남매와 어머니 상완은 유럽과 스위스를 중심으로 생활하며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1935년, 이 어린 가족에게 태국 왕실의 운명을 바꾸는 사건이 일어난다.
두 번째 Mahidol, 라마 8세 아난따 마히돈 국왕
Ananda Mahidol은 1925년 9월 20일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났다. 당시 라마 6세가 '아난따 마히돈'이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라마 6세는 쭐라롱껀 국왕의 아들로 아난따 마히돈의 숙부인 셈이다. 물론 그이 아버지와는 배다른 이복형제지간이다. 마히돈대학교 박물관 자료는 이 이름을 ‘마히돈의 기쁨’ 또는 ‘마히돈 왕자의 아들’이라는 의미로 설명한다.
그가 국왕이 될 것이라고는 누구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1935년 3월 2일, 라마 7세 프라차티뽁 국왕이 후손도 없이 왕위를 내려놓았다. 태국 의회는 왕실 혈통 중 프라자티뽁 국왕과 가장 가까운 혈족을 찾았는데 이복형제 조카인 8살의 아난따를 추대했고 그가 라마 8세가 되었다.
아난따 마히돈은 어린 나이에 즉위했지만, 당시 태국은 이미 1932년 혁명을 거쳐 입헌군주제에 들어간 상태였다. 따라서 국왕이 모든 국정을 직접 통치하는 시대가 아니었다. 더구나 아난따는 즉위 당시 스위스에서 교육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섭정들이 국왕을 대신하여 국가의 헌정 업무를 수행했다.
그의 재위기간은 1935년부터 1946년까지 태국 역사에서 매우 격동적인 시기로 1932년 입헌혁명 이후의 정치적 혼란, 군부의 영향력 확대, 제2차 세계대전과 일본의 태국 진입, 전후 정치적 재편이 모두 그의 짧은 재위기간에 겹쳤다. 그는 대부분의 기간을 해외에서 교육받으며 1938년에 처음으로 국왕 자격으로 태국을 방문했고, 이후 다시 스위스로 돌아갔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인 1945년 12월에야 태국으로 돌아와 왕으로서 본격적으로 국민과 접촉할 수 있었다. 1946년 6월 3일 방콕의 삼펭(Sampheng) 지역, 즉 중국계 주민이 많이 거주하던 차이나타운을 방문한 일은 잘 알려져 있다. 전쟁을 거치면서 태국인과 중국계 주민 사이에 긴장이 존재했던 상황에서 국왕이 직접 중국계 주민들을 찾아간 것은 화해와 통합의 상징적 행보로 평가된다.
그의 재위 중에는 오늘날 마히돈대학교의 직접적인 전신인 University of Medical Sciences도 만들어졌다. 1942년에 법적 기반이 마련되고 1943년에 의학·치의학·약학·수의학 분야를 묶은 대학이 정식으로 출범했으며, 이는 그의 재위기간에 이루어진 국가적 고등교육 개편이었다.
1946년 6월 9일, 그는 대관식을 앞두고 방콕 왕궁에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는 불과 20세였다. 그의 죽음은 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로 남았고, 사망 원인을 둘러싼 논란도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이 미스터리는 오늘날까지 남아있지만 이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다.
같은 날 태국 의회는 그의 동생인 푸미폰 아둔야뎃 왕자를 새로운 국왕으로 추대했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Mahidol Adulyadej이고 아들은 Ananda Mahidol인가
여기에서 흥미로운 문제가 하나 생긴다. 영어로 보면 아버지는 Mahidol Adulyadej, 아들은 Ananda Mahidol이다. 그러면 마치 아버지의 이름이 Mahidol이고 성이 Adulyadej, 아들의 이름이 Anand고 성이 Mahidol인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 일반적인 영어 표기에서는 그렇게 이해하기 쉽다.
하지만 태국 왕실의 이름 체계에서는 조금 더 복잡하다. 마히돈 왕자의 ‘Mahidol’은 본래 그의 개인 이름이다. 반면 아난따에게서 Mahidol은 왕실 가문명, 즉 ราชสกุล(라차사꾼) Mahidol이라는 의미를 갖게 되었다. 마히돈 왕자의 후손들은 ราชสกุลมหิดล(Ratchasakun Mahidol), 즉 ‘마히돈 왕실 가문’에 속한다. 마히돈 왕자는 이 왕실 가문의 시조로 여겨진다.
더구나 당시 태국에서는 현대적인 의미의 성씨 제도가 막 정착되는 과정에 있었다. 태국의 성씨 제도는 20세기에 도입되었고, 마히돈 가문 역시 왕실 가문명으로 ‘Mahidol’을 사용하게 되었다. 이를 family name 또는 surname의 ‘성’이라기보다는 태국 왕실 전통의 ‘왕실 가문명(ราชสกุล)’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세 번째 Mahidol, Mahidol University
오늘날 태국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Mahidol’은 사람보다 오히려 대학일지도 모른다.
Mahidol University(มหาวิทยาลัยมหิดล), 이 대학의 역사는 1969년에 갑자기 시작된 것이 아니다. 뿌리는 1888년 라마 5세가 세운 Siriraj Hospital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시리랏병원 안에는 태국의 현대식 의료인을 양성하기 위한 의학교육기관이 만들어졌고, 1893년에는 첫 의학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1917년에는 의학교가 쭐랄롱꼰대학교의 의학부로 편입되었다. 그리고 1942년 3월 10일에 ‘University of Medical Sciences’를 설립하는 법적 조치가 공포되어 법령에 의해 University of Medical Sciences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그 다음 해인 1943년에는 의학·치의학·약학·수의학 등을 포괄하는 독립적인 대학으로 정식 출범했다. 우리말로 ‘마히돈 약대’ 또는 ‘마히돈 의대’로 단과 전문대학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1969년,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아버지인 마히돈 왕자를 기리기 위해 University of Medical Sciences에 ‘Mahidol University’라는 이름을 부여했다. 이름을 바꾼 이유는 단순히 아버지의 이름을 기념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학은 의학만을 가르치는 전문대학에서 벗어나 보다 종합적인 대학으로 발전하고 있었다. 1964년부터 의학·과학뿐 아니라 태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다양한 학문을 포괄하는 종합대학으로 발전해 나갔다. 1969년의 개명은 바로 이러한 변화를 상징했다.
즉 Mahidol University라는 이름은 ‘의과대학의 이름’이 아니라 마히돈 왕자가 강조했던 지식과 교육을 인간과 사회의 이익을 위해 활용한다는 철학을 대학 전체의 이름으로 삼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오늘날 마히돈대학교는 의학만의 대학이 아니다. 의학과 보건학을 중심으로 과학, 공학, 사회과학, 인문학, 예술 등으로 영역을 넓힌 종합 연구중심 대학이다. 대학 스스로도 자신의 비전을 ‘world class university’로 설정하고 있으며, 의학과 보건 분야에서 전통적인 강점을 유지하면서 다양한 학문 분야로 확장해 왔다.
현재의 국제적 위상도 상당하다. 2026년 QS 세계대학평가에서 마히돈대학교는 세계 358위, 태국 대학 가운데 2위에 해당하는 순위에 올랐다. QS 아시아 대학평가 2026에서는 아시아 공동 55위를 기록했다. Times Higher Education(THE)의 2026 세계대학평가에서는 전체적으로 601–800위권이지만, 의학·보건 분야는 201–250위권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THE의 2026 지속가능발전목표 영향력 평가에서는 ‘Good Health and Well-being’ 분야에서 세계 1위로 평가되었다.
따라서 마히돈대학교의 현재 위상을 설명할 때는 단순히 “태국의 명문대”라고 하는 것보다, 태국을 대표하는 연구중심 종합대학이면서 특히 의학·보건·생명과학 분야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대학이라고 표현하는 편이 적절하다.
9월이라는 달에 세 Mahidol을 만나는 이유
여기서 세 명의 Mahidol이 하나로 연결된다.
- 마히돈 왕자는 태국 의료의 근대화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쳤다.
- 그의 아들 아난따 마히돈은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태국이 입헌군주제와 전쟁, 전후 사회변동을 겪던 시기의 국왕이 되었고 Mahidol 가문의 시조가 되었다.
- 그리고 또 다른 아들인 라마 9세 푸미폰 아둔야뎃은 1969년 아버지의 이름을 University of Medical Sciences에 부여, 대학교 이름을 Mahidol University로 변경하며 종합대학으로 성장했다.
라마 8세가 Mahidol 가문의 시조였지만, 대학이 기리는 직접적인 인물은 그의 아버지인 Prince Mahidol of Songkla다. 마히돈대학교 공식 역사도 대학 이름을 마히돈 왕자에게서 따온 것이라고 명확히 설명한다. 대학은 그를 ‘태국 현대의학과 공중보건의 아버지’로 평가한다.
9월 24일 Mahidol Day는 단순히 한 왕족을 추모하는 날이 아니다. 그날은 태국이 의학과 공중보건을 국가 발전의 핵심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역사를 되돌아보는 날이기도 하다.
9월 20일에는 아난따 마히돈 국왕이 태어난 날이며, 9월 24일에는 마히돈 왕자가 세상을 떠난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그 마히돈 왕자의 이름을 이어받은 마히돈대학교는 오늘도 태국에서 의학과 보건학뿐 아니라 과학과 사회과학, 인문학 등 여러 분야의 교육과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9월은 태국 현대사를 바라보기에 아주 좋은 달이다.
[글쓴이: 박동빈]
| 번호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추천 | 조회 |
| 공지사항 |
[대사관] 영사업무 수수료 안내 - 2026년 3월 기준
재태국한인회
|
2026.02.20
|
추천 0
|
조회 828
|
재태국한인회 | 2026.02.20 | 0 | 828 |
| 공지사항 |
주태국 공공기관 안내 - 2025년 11월 현재
재태국한인회
|
2025.12.03
|
추천 0
|
조회 1253
|
재태국한인회 | 2025.12.03 | 0 | 1253 |
| 공지사항 |
2026년 태국 공휴일 및 주요 기념일
재태국한인회
|
2025.12.02
|
추천 0
|
조회 6122
|
재태국한인회 | 2025.12.02 | 0 | 6122 |
| 공지사항 |
태국 정부, 주요 공공기관 및 대학/병원 등 웹사이트 링크 목록
thaihanin
|
2025.04.25
|
추천 0
|
조회 2123
|
thaihanin | 2025.04.25 | 0 | 2123 |
| 420 |
New [칼럼] 태국 엿보기 38 - 9월에 만나는 세 Mahidol
재태국한인회
|
2026.09.06
|
추천 0
|
조회 23
|
재태국한인회 | 2026.09.06 | 0 | 23 |
| 419 |
New App driver, 9월 30일까지 영업용 운전면허 취득해야
재태국한인회
|
2026.09.06
|
추천 0
|
조회 18
|
재태국한인회 | 2026.09.06 | 0 | 18 |
| 418 |
9/2일부터 디젤(B7-B20) 0.75바트, 휘발유 0.60바트 인상
재태국한인회
|
2026.09.01
|
추천 0
|
조회 19
|
재태국한인회 | 2026.09.01 | 0 | 19 |
| 417 |
태국 경찰, 8월 한 달간 전국 마약 조직 1,491개 적발·소탕
재태국한인회
|
2026.08.31
|
추천 0
|
조회 31
|
재태국한인회 | 2026.08.31 | 0 | 31 |
| 416 |
태국 당국, 7개월간 위조상품 184만 점 적발… 피해액 8억 바트 달해
재태국한인회
|
2026.08.31
|
추천 0
|
조회 29
|
재태국한인회 | 2026.08.31 | 0 | 29 |
| 415 |
태국 내 코로나19 환자 증가 추세, NB.1.8.1 변이 바이러스 주의
재태국한인회
|
2026.08.30
|
추천 0
|
조회 44
|
재태국한인회 | 2026.08.30 | 0 | 44 |
| 414 |
2026년 9월 태국 축제 및 이벤트
재태국한인회
|
2026.08.30
|
추천 0
|
조회 57
|
재태국한인회 | 2026.08.30 | 0 | 57 |
| 413 |
외국인 강제 추방에 관한 총리실 규정, 8.28일부터 시행
재태국한인회
|
2026.08.30
|
추천 0
|
조회 34
|
재태국한인회 | 2026.08.30 | 0 | 34 |
| 412 |
2026 왕실 선박 행렬(Royal Barge Procession) 및 사전 리허설에 초대합니다
재태국한인회
|
2026.08.25
|
추천 0
|
조회 57
|
재태국한인회 | 2026.08.25 | 0 | 57 |
| 411 |
2026년 9월부터 주택용 전기 요금 체계 개정
재태국한인회
|
2026.08.25
|
추천 0
|
조회 59
|
재태국한인회 | 2026.08.25 | 0 | 59 |
| 410 |
[칼럼] 태국 엿보기 37 - 3,400억 바트로도 치유되지 않는 비극, 태국 남부 분쟁의 뿌리를 읽다
재태국한인회
|
2026.08.23
|
추천 0
|
조회 58
|
재태국한인회 | 2026.08.23 | 0 | 58 |
| 409 |
방콕~사뭇사콘 M82 고속도로 일부 구간 8월 28일 임시 개통, 무료 통행
재태국한인회
|
2026.08.23
|
추천 0
|
조회 42
|
재태국한인회 | 2026.08.23 | 0 | 42 |
| 408 |
[속보] 남부 국경지역 동시다발 테러, 통행 자제 및 안전 주의 당부
재태국한인회
|
2026.08.22
|
추천 0
|
조회 42
|
재태국한인회 | 2026.08.22 | 0 | 42 |
| 407 |
방콕, 온라인 사기 발생 건수 최고치 기록…여성과 젊은층 피해 집중
재태국한인회
|
2026.08.18
|
추천 0
|
조회 66
|
재태국한인회 | 2026.08.18 | 0 | 66 |
| 406 |
휘발유 및 디젤유, 8/19일부터 0.85바트 인상
재태국한인회
|
2026.08.18
|
추천 0
|
조회 44
|
재태국한인회 | 2026.08.18 | 0 | 4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