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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태국 엿보기 20 - 라마9세 ‘푸미폰 아둔야뎃’ 대왕을 기리며

작성자
재태국한인회
작성일
2025-10-10 12:42
조회
186



10월 13일은 라마9세 푸미폰 아둔야뎃(Bhumibol Adulyadej  ภูมิพลอดุลยเดช) 대왕을 기리는 날이다.

역대 최장 재위의 군주 푸미폰 아둔야뎃은 1946년부터 2016년까지 태국의 왕으로 재위하며, 70년간의 긴 통치 기간을 기록하며 '국민의 아버지'로 존경받으면서 태국 국민에게 깊은 사랑을 받았고, 2016년 10월 13일 그의 죽음은 태국 전역에서 모든 국민이 애도하였다.

공식적으로 "대왕"으로 불리는 그는 1946년 6월 9일 즉위한 이래 2016년 10월 13일까지 70년 126일 동안 세계에서 가장 장기간 집권한 국왕이었다. 그의 이름 푸미폰 아둔야뎃은 '땅의 강함, 비교할 수 없는 힘'이라는 의미이다.

푸미폰 국왕은 1927년 12월 5일 미국 매사추세츠주 케임브리지에서 태어나 1928년 부친이었던 ‘마히돈 아둔야뎃’왕자가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마친 후 태국에 돌아와 방콕에 있는 메터 데이 학교에 들어갔다. 

부친 ‘마히돈 아둔야뎃’ 왕자는 라마5세 출라롱껀왕의 69번째 아들로 태국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그의 의학적 공로를 기리기 위해 설립한 대학이 현재의 마히돈 대학이다. 우리가 흔히 듣는 '마히돈'이라는 이름은 이 분 외에 라마 8세 마히돈 왕과 혼돈하기도 한다. 라마 8세인 ‘아난타 마히돈’왕은 바로 이 ‘마히돈 아둔야뎃’ 왕자의 아들이며 푸미폰 국왕의 형이다.

푸미폰 대왕의 부친 ‘마히돈 아둔야뎃’왕자가 1929년에 37세의 나이로 안타깝게 일찍 사망하면서, 1933년에 그의 모친이 2남 1녀 자식들을 스위스로 데려갔다. 그는 그곳 로잔에서 학교를 다녔다. 1935년 형인 ‘아난타 마히돈’이 태국의 왕이 되자 가족들은 1938년 아난타 형의 대관식을 위해 모두 태국으로 돌아왔지만, 대관식이 끝난 후 다시 스위스로 돌아갔다. 1942년에는 로잔 대학교에서 물리학과 법학을 공부했고,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나자 그들 가족은 귀국을 했다.

라마8세에 즉위했던 형이 1945년 귀국한 후 1년 만에 석연찮은 죽음을 당하자, 1946년 푸미폰은 왕좌를 계승했다. 아난타의 죽음은 왕실 침대 밑에서 머리에 총상을 당한 것으로 오늘날까지 미해결로 남아있다. 왕위를 계승한 다음 푸미폰은 삼촌(큰아버지)인 ‘차이낫 랑싯 프라유라삭디’를 섭정 및 대리청정에 임명하고 학업을 마치기 위해 1947년 스위스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전공을 법학에서 정치학으로 전환하여 통치자로서의 준비를 했다. 

스위스에서 학위를 마치자 곧 파리를 방문했다. 그곳에서 그는 주프랑스 태국 대사의 딸인 사촌 ‘몸라차웡 시리낏 끼띠야꼰’을 만났다. 그때 그의 나이는 21세였고, 그녀는 16세였다. 1948년 10월 4일 푸미폰은 제네바-로잔 도로를 운전하다가 로잔 시외 10 km 지점에서 트럭의 뒤를 들이받는 교통사고를 당하였다. 그는 척추를 다치고, 찰과상을 입었으며 오른쪽 눈을 실명하였고, 결국 의안을 하게 된다. 그가 병원에 있는 동안 '시리낏'이 자주 방문을 하여 두 사람 사이는 급격히 가까워졌다. 그녀는 어머니에게 푸미폰 곁에서 공부를 하게 해 달라고 졸랐으며, 푸미폰은 주변의 학교를 주선해 주었다. 1949년 7월 19일 조용한 약혼식을 올리고, 태국으로 돌아와 1950년 5월 5일 대관식 치르기 일주일 전에 결혼식을 올렸다.

태국의 국민들이 국민의 아버지라고 부르던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왕이 되고서부터 전국 각지 산간의 국민들을 찾아가 만나며 그들이 처한 상황과 삶을 이해하고, 그들의 삶의 환경을 고치기 위해 노력했으며 19번의 쿠데타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왕실과 정치를 든든하게 지키면서 태국 국민들에게 구심점이 되었다. 그런 노력을 인정받아 1988년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은 막사이사이상을 받았다.


태국 헌법은 1장 총칙 바로 다음에 2장은 6조부터 24조까지 국왕에 대해 규정하고 있는데 2장 7조에 “국왕은 불교신자로 종교를 수호하여야 한다” [2017년 개정 헌법]라고 명시되어 있고 불교에서 유래한 이상적인 국왕을 가리키는 '탐마라차' 왕권의 특징과 깊은 관계가 있다. 

모든 왕들이 탐마라차가 되기 위해 노력해 해욌다. 푸미폰 국왕은 스위스 로잔 대학에 유학 중이던 1946년 19세의 나이에 즉위, 1950년 학업을 마치고 귀국, 공식적인 대관식에서 “모든 태국 국민들의 복지를 위하여 법에 따라 통치할 것”을 선언하고 1956년 왕실사원에서 대승정의 주재아래 수계식을 갖고 ‘푸미파로’라는 법명을 받았으며 56년 10월 22일부터 11월 5일까지 단기간의 승려생활을 하게 되었다. 

쑤코타이 왕국 이래 모든 왕들은 '탐마라차'라고 불리는 이상적인 국왕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기록에 의하면 태국 최초의 통일 왕국인 쑤코타이 왕국 시대에 리타이 왕(1347~1374)이 왕의 신분으로서는 최초로 승려수업을 하였다고 한다.

이는 태국의 ‘탐마라차’라 불리는 온정주의적 법왕(法王)과도 관련이 있다. 태국의 고대법전인 프라탐마삿에 의하면 탐마라차는 시법(十法)을 준수할 때만이 국왕으로서의 정당성을 갖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시법은 국왕이 이상적으로 준수해야 할 10가지의 통치덕목을 언급한 것으로 보시(布施), 지계(持戒), 희생, 공정, 온화, 노력, 불노(不怒), 불해(不害), 인내, 불역(不逆)등을 말한다. 불교에서는 이러한 법에 따라 정의롭게 통치하는 왕을 가장 이상적인 왕으로 여기고 그를 ‘탐마라차’라고 불렀다. 

따라서 탐마라차는 법을 준수함으로써 통치의 정당성을 갖게 되며 만약, 법을 거슬러서 불법(不法)을 저지르는 왕이 있을 경우에는 그 왕의 통치권을 거부하는 일이 정당화되기도 했다. 이러한 까닭으로 왕실의 승려수업은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라마9세 푸미폰 국왕도 1956년 10월 22일부터 왕실사원에서 15일간 단기 승려수업을 하면서 탁발의식을 행하고 엄격한 수도생활을 함으로서 불타의 가르침을 행하는 탐마라차의 모습을 보여 준 바 있다.

그의 카리스마는 총칼에서 비롯된것이 아니다. 그의 정치적인 소신은 불교의 이상적인 통치자 " 탐마라차"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1년 중 절반 이상을 태국의 민의를 들으려 보살행의 길을 걸었다. 오랜 가뭄으로 고통 속에 허덕이던 동북부 마을을 찾아가 일주일 동안 백성들과 같이 금식을 하며 고통을 함께 나누던 중 하늘로부터 비를 내리게 한 일화는 너무나도 유명한 이야기이다.

또한 그는 단 한번의 정치적인 부정 부패나 스캔들로부터도 자유로울 만큼 스스로의 관리를 철저하게 지킨 지도자였으며, 다른 정치인들을 만나며 정치적인 흥정을 하기보다는 대부분의 시간을 태국의 가난한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행보를 행함으로 국민의 존경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것이다. 정부인 4명까지 둘 수 있는 왕실법과 달리 그는 일부일처를 지키며 단 한번도 여성 관련 스캔들없이 한 여인에게 진실된 모습을 보이므로 태국 상류층과 지식인층들도 그를 인간적으로도 존경하고 있다.

푸미폰 대왕은 탁발의식을 행하고 엄격한 계율의 수도생활을 함으로서 법을 실천하는 탐마라차로서의 면모를 보였고 그 후 성공적인 입헌군주직을 수행함으로써 1986년 12월 5일 60회 생일에 입헌군주로는 최초로 대왕 (King Bhumibol Adulyadej The Great) 으로 추대되었다. 사후에 ‘대왕’으로 추대된 왕은 수코타이 왕조의 ‘람캄행’ 대왕과 아유타야 왕조의 ‘나래수언’ 대왕, 랏따나꼬신 왕조의 ‘출라롱껀’ 대왕이 있다.

그의 자녀로는 1남 3녀가 있는데 아들 한 명이 바로 지금의 라마10세 ‘와찌라롱컨’왕, 첫째 딸 우본랏 랏차깐야 (Ubonrat Ratchkalya), 셋째 딸 시린톤텝랏 랏차수다 (Siritorntheprat Ratchasudha), 넷째 딸 출라폰 와라이락 Chulaporn Walairak)이다.  


푸미폰 대왕의 족보를 잠깐 살펴보자.

푸미폰 대왕은 현 왕조의 시조인 초대 짝끄리 왕의 5대손(현손)이며 5대 왕인 라마5세 쭐라롱컨 왕의 손자이다. 라마1세 짝끄리 1782년 즉위, 본명 풋타엿화쭐라록, 랏따나꼬신 짝끄리 왕조 시조이다. 부왕에 동생 쑤라씨, 부왕보에 조카 아누락 임명하였으나 왕이 사망하기 전에 모두 사망하여 라마1세가 죽은 1809년 그의 장남인 이싸라쑨턴이 승계하여 라마2세가 되었다. 

1824년 라마2세 사망, 적자 장남인 ‘몽끗’은 나이 20세가 안되었고 승려생활[부엇낙] 시작한지 13일 밖에 안되어 당시 37세로 국정 전반을 처리하고 있던 서자인 ‘쳇싸다보딘’이 승계, 라마3세가 되었다 (1824-1851년 재위).

라마3세 ‘쳇싸다보딘’이 1851년 사망하자 승려생활을 27년간 계속하던 라마2세 이싸라쑨턴의 장남 ‘몽꿋’이 승계하여 라마4세 [3세의 이복동생, 흔히 몽꿋(Mongkut) 왕이라 칭함, 1851-1868 재위] 가 되었고 그의 아들 ‘쭐라롱컨’이 15세에 즉위 라마5세가 되었다. (1868-1910 재위). 이 시대를 배경으로 유명한 영화가 “King & I”로 몽끗왕이 이 영화의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아직도 태국에서는 상영금지다.

라마5세 쭐라롱컨의 아들 ‘와치라웃’이 라마6세 (1910-1925)가 되었고, 5세 아들이자 6세 동생인 ‘쁘라차띠뽁’이 라마7세 (1925-1935)가 되었으며, 라마7세 때인 1932년 헌법이 제정되어 절대군주국에서 입헌군주국이 되었고 왕권이 법적으로 제한되었다.

라마5세 쭐라롱껀 대왕은 수많은 부인을 두었으며 그 중에 정부인 Royal Queen 이 네 명이었고 77자녀를 두었으며 라마6세 와치라웃의 동생인 라마7세 쁘라차띠뽁은 76번째 자녀라고 한다. 우리나라 세종대왕도 부인과 자녀가 역대 왕 중에 가장 많았다는데 무슨 공통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라마7세는 후손이 없어 그의 조카인 ‘아난타 마히돈’이 라마8세 (1935-1946)가 되었고, 8살 동생인 ‘푸미폰 아둔야뎃’이 1946년부터 라마9세로 등극하였다. 라마8세는 등극 후 계속 스위스에서 공부하다가 1946년 귀국하여 대관식을 치렀지만 그 후 몇 달 안되어 침실에서 총으로 자살한 모습으로 발견되었는데 자살이 아니라 암살되었다는 주장도 있지만 공식적인 조사 결과 자료는 없는 것 같다. 일설에 의하면 당시 왕권과 법에 의한 수상을 비롯한 군부 세력간의 알력으로 집권층에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국왕인 8세를 암살하고 어린 9세를 국왕으로 추대하였고 당시 스위스에 유학 중이던 십대 나이의 9세는 학업을 핑계로 귀국 및 대관식을 5년이나 미루어 온 것도 이런 권력암투 현장의 정리단계를 기다려 안전이 확보된 후 귀국하여 정식으로 대관식을 치른 게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를 논하거나 문제 삼는 여론은 전혀 없다. 푸미폰 대왕이 워낙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글쓴이: 박동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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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orean Association in Thailand expresses its deepest sorrow and heartfelt condolences on the passing of Her Majesty Queen Sirikit, The Queen Mother, the beloved Mother of the Thai Nation.

Her Majesty’s lifelong devotion to the people of Thailand, her compassion, and her tireless dedication to social and cultural development have been an enduring inspiration to all. Her grace and benevolence will forever be remembered with the highest respect.

On behalf of all Korean residents in Thailand, we extend our profound sympathy to the Royal Family and the people of Thailand during this time of national mourning.

May Her Majesty rest in eternal peace.

October 25, 2025
The Korean Association in Thailand

재태국한인회는 깊은 슬픔과 애도의 마음으로 태국 국모(國母)이시며 국민들의 어머니시며 지킴이셨던 여왕 폐하 시리킷 왕태후의 서거 소식을 접하며 깊은 슬픔과 진심의 애도를 표하는 바입니다.

왕태후 전하께서는 평생을 태국 국민과 왕실, 그리고 사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시며 자비와 봉사의 상징으로 존경받아 오셨습니다.

그분의 사랑과 헌신은 태국 국민의 마음속에 추모와 존경심과 함께 영원히 살아 있을 것입니다.

태국에 거주하는 모든 한인들의 마음을 모아, 재태국 한인회는 태국 국민과 왕실에 깊은 위로와 애도의 뜻을 표합니다.

폐하의 영혼이 평안히 안식하시기를 기원드립니다.

2025년 10월 25일
재태국한인회